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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및 역사.문화 탐방

충주미륵대원지(2)

2023년 10월 31일 충북 충주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미륵대원지 여래석불을 둘러보았습니다. 사적 317호로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펼쳐져 있다.  2014년 7월10일 부터 복원보수공사를 시작했지만 금년 10월에 장장 9년만에 마무리 되었다고하네요. 그간 두 번이나 이 곳을 방문했지만 가림막으로 불상을 친견할 수 없었습니다.

미륵리 사지(彌勒里寺址)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꿈속에 관세음보살로부터 석불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하늘재를 넘자마자 지세를 확인하고는 지금의 미륵리에 석불을 세워 절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또한 미륵사지의 석불은 북두칠성을 바라보는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다.

미륵리 원터--- 이 원터는 하늘재길과 연관되어 고려초기에 설치하여 운영된 것으로 보이며,사찰과 원터의 기능이 함께 이루어진 고려초기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되고있다.‘미륵대원’은 뭘까. 조선 시대 교통 요지의 주요 도로에는 ‘역원(驛院)’이 있었다. 역(驛)은 관리들이 출장을 갈 때 타고 갈 말을 대는 곳이었고, 원(院)은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공공 여관이었다.   미륵대원은 ‘하늘재’ 아래에 있었다. 하늘재는 신라의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했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문경새재가 놓이기 전 하늘재는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넘어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하늘재를 막 넘어온 이들이 미륵대원에서 묵어갔다. 하늘재 아래 설치된 공공 여관은 규모가 커서 그냥 ‘원(院)’이 아니라 ‘대원(大院)’이라고 불렸다. 미륵대원에는 사찰이 있었다. 이른바 ‘공공 여관의 부속 절집’이었던 셈인데, 절집이 부속 시설이 아니라 공공 여관과 한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륵리 사지에서 미륵대원지로 공식 명칭이 바뀐 연유다.
석등을 통하여 여래입상을 본 모습
미륵대원지 옆 개울 사이의 세계사에서 촬영
불상 옆 모습

 

 

 

미륵대원지 석조여래입불상 보수공사 공고문. 그러나 보수공사가 연장되어 총9년여년간 지속되었다.(2014.7.10-2023.10. )
미륵리석조여래불과 덕주사 마애불과의 관련을 짐작하게하는 덕주사 입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