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5일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둘러보고 이어서 해미읍성을 구경하였다
아래 사진은 동문방향 공용주차장 근처의 성벽의 모습이다
조선말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해미읍성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신자가 잡혀와 고문받고 죽음을 당했으며, 특히 1866년 박해때에는 1천여 명이 이 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성내 광장에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서 있다. 바로 성문밖 도로변에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해 살해했던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성벽 주위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데 이용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순신은 1576년(선조 9년) 무과 급제하고 권관과 훈련원 봉사를 거쳐 세번째 관직으로 1579년(선조 12년)에 충청병마절도사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해미읍성에서 10개월 간 근무하였다. 당시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공은 구차하게 낮고 고달픈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뜻을 꺾고 남을 따른 적이 한번도 없었으며 상관인 주장에게 부정한 사실이 있으면 극진히 말하며, 이를 바로 잡았고, 청렴한 자세로 자신의 몸을 단속하면서 털끝만큼도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는 법이 없었다고 전한다.
해미읍성은 동,남,서의 세 문루가 있다. 최근 복원 및 정화사업을 벌여 옛 모습을 되찾아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1791년(정조 15) 신해박해 때 천주교도라는 모함을 받아 해미읍으로 유배를 왔었으나 정조의 비호로 10일만에 유배가 해제되어 돌아간적이 있다 1801년대 순조 때 신유박해로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천주교 박해는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병인양요, 1868년 남영군 분묘 도굴사건 이후 더욱 극심해진다. 조선 후기 충청도 서북 지역(내포지방 13개군현)의 군사와 치안을 함께 관장하던 해미진영(海美鎭營)은 이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임무도 맡고 있었다. 따라서 해당 지역의 천주교도들을 모두 잡아들여 해미읍성에서 처형하였다. 당시 처형된 천주교인들은 무려 1,000여명 이상 이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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