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및 역사.문화 탐방

여주 신륵사 둘러보기

hadosub 2022. 5. 13. 09:52

2022년 4월 28일 세종을 출발하여 경기도 여주에 있는 신륵사를 둘러보았습니다

신륵사라는 이름은 신령 신()에 굴레 륵()자를 쓰는데 풀이하면 신비로운 굴레라는 뜻이다. 고려 우왕 때, 마을에 용의 머리와 말의 몸을 가진 용마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고통을 줬는데 이때 나옹화상이 용마에게 신비한 굴레를 씌워 제압시켰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용마는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를 뜻할 것이다. 폭우 때마다 여강이 범람해 수해를 입으면, 마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부처님에게 올리는 기도뿐이었을 것이다. 또한 나옹화상은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이름난 고승이었고 그 당시 사람들은 정신적 지주로 여겼을 것이다.

신륵사는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품고 있는 설화와 보석이 무수한데 그중 단 한 가지의 키워드를 꼽자면 나옹화상(선사)이다. 나옹화상은 신륵사에 은행나무 지팡이를 꽂았다. 이것이 자라  수령 650년이 넘은 아름드리 노거수가 되었다.

나옹화상이 신륵사에 심은 은행나무 .  수령 650년이 넘은 아름드리 노거수다.

금당으로 들어서기 전 통과하는 중문격의 오래된 누각은 구룡루다. 단청이 희끗해진 오래된 누각으로 1858년 중창되었다.구룡루라는 이름은 절의 창건설화에서 기원했다. 확인된 기록은 없으나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원효대사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자리라 일러주었고 원효는 연못을 메워 절을 지었는데 그곳이 바로 신륵사였다고 한다. 연못을 메우기 전, 연못에서 9마리의 용이 승천했다고 하는 설화에 따라 누각 이름이 구룡루가 되었다. 극락보전과 그 앞의 다층석탑을 감상하기에 구룡루만큼 좋은 자리가 없다. 시선의 각도에 따라 다층석탑 뒤로 극락보전 내부에 모셔진 아미타불이 석탑머리와 맞닿아 보인다.

극락보전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28, 다층석탑은 보물 제225,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보물 제1791호다. 보물들의 진가를 확인하려면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야 한다. 화강암이 아닌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신륵사 다층석탑은 얼핏 봐도 고급스럽고 세련된 자태로 기단에 돋을새김한 정교한 구름과 용이 백미다.

화강암으로 만든 기단 위에 흙으로 구운 벽돌을 쌓은 형태로 마치 서로 다른 탑 두 개가 합쳐진 듯하다. 보물 제226호 신륵사 다층전탑으로 국내에 몇 기 남지 않은 다층전탑이자 고려시대의 것으로는 유일한 문화재다. 풍수적으로는 수해를 막는다는 의미의 비보탑(裨補塔) 역할을 한다. 벽돌을 자세히 보면 넝쿨 문양, 반원 문양 등이 새겨져 있으며 탑 안에는 나옹화상의 사리 중 5개를 봉안했다고 한다. 1726, 탑이 무너져 복원 작업을 할 당시 나옹탑이라는 기록이 나왔다. 높이는 약 9.4m로 강 위에서도 탑이 잘 보인다. 옛날에는 물길을 따라 한양으로 향하던 뱃사공들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등대 역할을 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화상이 남긴 <청산가>. 오랫동안 머물며 강을 바라보게 되는 정자 강월헌(江月軒)’은 나옹화상의 당호이며 삼층석탑은 나옹화상을 다비(茶毘, 불교식 화장)했던 자리에 세운 것이다.

비석에는 고려 말 유학자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나옹화상의 제자들과 대장경을 새기고 장경각을 세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