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관람(반가사유상)
2022년 2월 20일 결혼식 하객으로 참가할때에 시간적 여유가 생겨 국립중앙박물관을 관람할 기회를 마련하였다.
경천사지 10층 석탑
1907년 순종의 가례식에 참석한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에 의해 불법적으로 해체·반출되었다. 반출 이후 호머 헐버트·어니스트 베델의 비판 기고를 비롯한 비난 여론이 일자 1916년 조선총독부는 석탑 반출 사실을 조사하고 1918년 11월 15일[2] 한반도로 반환하였다.반환 후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방치돼 있다가, 1960년에 수리해 경복궁에 세워졌고, 1962년 국보 제86호로 지정되었다. 1995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보존처리되다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현재에 이른다.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은 고려 충목왕 4년 (1348년) 시기에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는 경천사에 세워진 석탑이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위치되어 있다. 탑의 높이는 13.5 미터로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86호로 지정되었다. 3단으로 된 기단(基壇)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基壇) 역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었다가, 4층에 이르러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화려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부처, 보살, 풀꽃무늬 등이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돌리고,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의 기와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탑의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국보 반가사유상(전시실 오른쪽) 한 점은 1912년 이왕가 李王家박물관이 일본인 고미술상 가지야마 요시히데 梶山義英에게 2,600원이라는 큰돈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또 다른 한 점(전시실 왼쪽)은 같은 해에 조선총독부가 사업가이자 골동품 수집가인 후치가미 사다스케 淵上貞助에게 4,000원을 보상해 주며 구입했고,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입수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1945년 국립박물관이 인수하였고, 이왕가박물관(덕수궁미술관) 소장품은 1969년 국립박물관에 통합되었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보존하고 있던 사찰과 만든 곳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서들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며, 옛 사람들의 말을 통해 전해질 뿐입니다. 보관 상태, 장신구, 옷 주름 등의 모양으로 살펴볼 때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반가사유상(전시실 오른쪽)은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가볍게 얹고 오른손을 살짝 뺨에 댄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반가사유상’이라는 명칭은 상 像의 자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반가 半跏’는 양쪽 발을 각각 다른 쪽 다리에 엇갈리게 얹어 앉는 ‘결가부좌 結跏趺坐’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뜨린 자세입니다. ‘사유 思惟’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상태를 나타냅니다. ‘반가의 자세로 한 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을 반가사유상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