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뿌리찾기

경유재와 경덕사의 역사적 배경

hadosub 2009. 10. 2. 15:05

경유재(慶流齋)          경남 진주시 옥봉남동 580번지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고헌(苦軒)공 큰아드님이신 유종(有宗)할아버님께서 경산부사 벼슬을 그만두시고 진주 집으로 돌아오셔서 1384년에 개경원(開慶院)을 건립하여 오고가는 여행자와 관원들의 숙박의 편리를 봐주시고 이집은 진주목사 박자안(晉州牧使 朴子安)이 건립했다고 공을 돌리시니 효우군자(孝友君子)라고 평판이 자자했다 세월이 흘러 개경원에서 수리를 거듭하여 오늘날에는 경유재(慶流齋)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뒤쪽에는 1957년10월 묘제시에 전국의 자손들이 뜻을 모아 경류재의 경내에 사당을 짓기로 결의하고 1958년 11월2일에 착공하여 그 다음해인 1959년 2월26일에 상량식을 거행하였고  1960년 3월21일에  경덕사가 준공되었다
경유재 현판은 대원군 이하응의 친필이다

 진양인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문정공 교은 정이오(晉陽人郊隱 鄭以吾) 공이 개경원 기문을 썼다

     

           경유재 (慶流齋) 모습   

        

         경덕사(景德祠)             소재지: 경남 진주시 옥봉남동 580번지 경유재 경내. 향사일: 음력2월말정

 진양하씨의 시조인 사직공 하진을 주벽으로 원정공 하즙, 고헌공 하윤원, 봉산군 하유종,목옹공 하자종, 군사공 계종 6위를 봉안한 사우이다. 이곳에 모셔진 여섯 분 중 원정공, 고헌공, 목옹공 세분은 임진왜란 이전 진주의 북쪽 집현산 응석사 경내에 그 영당이 세워져 초상이 모셔지고 많은 위토 전답이 붙어져 대대로 봉안되어  왔으나 불행히도 임란때에 영당이 소실되고 말았다. 이로부터 365년이 지난 1957년 10월 묘제시에 전국의 자손들이 뜻을 모아 경류재의 경내에 사당을 짖기로 결의하고 1958년 11월 2일에 착공하여 그 다음해인 1959년 2월 26일에 상량식 을 거행하였고 1960년 3월 21일에 경덕사(景德祠)가 준공되었다.

 

                                                                              경덕사(景德祠) 모습

                                        경유재 전경사진(진양하씨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

2015년도 춘향제때 촬영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