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및 역사.문화 탐방

운현궁을 둘러보고

hadosub 2014. 9. 9. 09:09

운현궁(雲峴宮)은 흥선대원군의 사저였으며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 이다.

즉 임금이되기 전까지 출생 성장한 곳.철종이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 조씨는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고종)으로 하여금 대통을 계승하게 하였다. 

이때 왕의 즉위식(1863129)을 하고나서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부인 민씨는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敎旨)가 내려졌으며, 이때부터 흥선군의 사저는 운현궁으로 불리게 됨. 

 운현궁(雲峴宮)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과 어머니 여흥부대부인 민씨가 기거했던 사가(私家)이면서도 고종이 출생한 곳이기도 하며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지내왔던 곳.그 후 고종의 형이자 대원군의 장남인 흥친왕이 사용하기도 하였어요

  또한 1863년 고종이 12세의 나이로 즉위하고 대원군이 섭정을 하게 되면서 부터 운현궁이 정치의 일번지로 크게 부각 되기 시작했다고 함.

 

 

 

 

쪽의 천 전시

 

노안당은 운현궁의 사랑채로 1864(고종 1)에 지었는데 흥선대원군이 거처하던 곳으로 국정을 논의하던 역사적 장소입니다.

 

난을 그리는 대원군

고종의 봉서식에 영의정(붉은색), 도승지 ,대원군 모습

고종의 봉서시 장면

 

 

노락당은 노안당과 비슷해 보이지만,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 1866(고종3) 삼간택이 끝난후 명성황후가 왕비수업을 받던 곳이자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치뤄진 곳이기도 합니다.

 

 

 

 

 

 

 

 

유치원생들릐 운현궁의 이락당 구경 모습

 

이로당.노락당에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치뤄진후 노락당을 더이상 안채로 사용하기가 어려워지자 1869(고종6)에 새로 지었음. 금남지역으로 남자들이 쉽게들어올수 없게 자형으로 만들었습니다.

 

 

 

정문 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