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탐방
60년전 초등학교 6학년때 수학여행으로 이 곳을 온 이래 서너번 왔지만 사진자료를 남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 번 기회는 두고 두고 볼 수 있어 좋다.통도사는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스님에 의하여 창건된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으뜸인 불보사찰이다. 즉, 팔만대장경판을 모신 법보사찰 해인사, 조계종의 중흥조이신 고려국의 보조국사(普照國師)이래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신라시대에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금란가사(金欄袈裟)를 봉안한 통도사는 그러므로 세 사찰 중에서도 으뜸인 불보사찰이라 한다. 통도사를 불지종가[佛之宗家刹 불자들의 마음의 고향]이요, 국지대찰[國之大刹: 나라의 으뜸 가람]이라고 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도사에 봉안된 진신사리와 금란가사(金欄袈裟)는 자장율사께서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모셔온 것이다. 따라서 통도사는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창건 이후 신라 고려시대를 거치며 왕실과 대중의 비호속에 한국 불교의 구심처로 자리 잡았다. 고려시대에는 원나라에서 사신이나 귀족들이 고려에 올 적에는 가장 먼저 통도사에 참배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억불과 임진왜란에도 굴하지 않고 중창을 통하여 면면히 법등(法燈)을 이어왔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16개 대표사찰가운데 경상남도의 대본산(大本山)이 되었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15교구 본사(本寺)임 .〈참배일:2013년 4월 18일〉
영축총림-(해탈문)
일주문 -- 영축산통도사 글씨는 대원군,세로의 편액 글씨는 김규진 글씨라고 함
천왕문
범종루
극락보전(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불과 그 좌우에 협시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1369년(고려 공민왕 18) 성곡대사(星谷大師)가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그후의 중건과 중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며, 건물의 내부에는 목조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극락보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외벽의 험한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향하는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이다. 배의 모습은 앞을 용머리(龍頭), 뒤를 용꼬리(龍尾)고 나타내었고, 그 앞뒤에는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합장한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이 그림은 비록 근세에 그려지기는 했으나 구도와 내용면에 있어 보기 드문 우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통도사 극락보전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건물이지만 뛰어난 짜임새와 벽화로 인해 중요성을 인정받아 경남유형문화재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전(팔상탱화가 봉안)
만세루(본래 법회나 법요식을 거행할때 사용한 누각
약사전(중생의 병을 구제하는 약사여래상 봉안)
불이문 (중로전 구역으로 들어가는 문)
공사중인 관음전
봉발탑 ( 보물 제471호로 통도사의 용화전 앞에 서 있는 것으로 ,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모습이다.
바로지나불 봉안
미륵불 봉안
37조도품탑(깨달음을 얻기위한 37가지 수행방법) 즉, 4염처(念處), 4정근(正勤),4여의족, 5근(根) , 5력(力), 7지(覺支), 8정도(正道)
해장보각의 조사문
자장율사 영정 봉안
세존비각(금강계단 축대 아래에 세워져 있고 자장율사가 적멸보궁을 건립한 내력을 소개한 글귀가 있음)
고승의 초상을 모신 곳
대웅전 (동쪽방향 편액)
남쪽방향 금강계단 편액
구룡지(통도사 창건 설화를 담고있는 연못)
서쪽방향의 대방광전
불사리탑
북쪽의 적멸보궁 편액을 보고 촬영
남쪽은 금강계단, 동쪽은 대웅전,서쪽은 대방광전,북쪽은 적멸보궁으로 편액이 걸려있음
금강계단 적멸보궁에서
응진전
불사리탑-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
보광전
정변전
청법전(설법전)
명부전(지장보살 봉안)
개산조당 앞의 5층석탑
자장율사의 백화도량 발원문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고성 옥천사 괘불탱
월하 스님 글씨
성보박물관
가람 배치도